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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꿍시렁

조직의 분위기

붉은 10월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국내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나름 많은 이들에게 각인되어 만만치 않은 팬이 존재하는 영화입니다.


출처: http://unforgettable.tistory.com/entry/%EB%B6%89%EC%9D%80-10%EC%9B%94-The-Hunt-for-Red-October-1990


이 영화에서 핵잠수함의 함장으로 출연하는 숀 코너리의 카리스마 있는 연기와 긴장감은 많은 팬들에게 칭찬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영화가 빛을 발했던 것은 당시 촬영장의 분위기가 한몫을 했기 때문이라는 뒷얘기가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어느 잡지에서 본 듯해서 이유는 확실치 않습니다만, 숀 코너리가 촬영장에서 사소한 문제에 대해 크게 불쾌함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기라성 같은 배우의 행동에 주위 배우들과 스텝들은 당연히 긴장할 수밖에 없었고 그 긴장감이 유지되는 채로 어떤 장면을 위한 촬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마음먹으면 3차 대전을 일으킬 수 도 있는 핵잠수함의 함장이 보여주는 카리스마와 그를 따르는 승무원들의 모습은 영화가 만들려고 하던 긴장상태를 제대로 표현하게 했던 것이죠.


저는 '통제'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관대한가에 대해 자주 생각해 봅니다. 특히 '분위기'에 의한 통제나 관리에 대해서 더욱 관심이 갑니다. 즉, 개인은 자신이 자신을 통제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인지를 제삼자가 되어 옆에서 보면 단번에 알아챌 수 있는 상황들을 보면서 말입니다. 가끔 이런 말을 듣기도 합니다.


'나는 출, 퇴근 시간을 정해야 한다고 생각해. 정해놓지 않으면 늦게 나오는 사람들이 만드는 분위기로 인해 내 출근시간도 한없이 늦어지기 시작할 거거든.'


많은 생각이 드는 말일 겁니다. 저도 해 봤던 말입니다.


시키는 대로, 하던 대로, 정해진 대로, 어디에 쓰인 대로 하지 않으면 스스로가 통제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즉, 자신이 분위기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가 자신을 통제하는 것에 익숙한 것이지요.

물론, 그 반대인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이와 잠시 떨어져 보겠습니다.


요즘은, 세상에 나름대로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일화를 많이 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절대로, 분명하게 저 혼자만의 생각으로) 그들의 특징에서 공통점을 찾아보고자 하였습니다.


출처: 위키피디아



갈릴레오 갈릴레이

갈릴레오는 원래 성격이 독설을 잘하고 자신이 맞는 것은 절대 물러서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 같은 성격은 그의 대학생활에서도 잘 나타난다. 대학에서 학생들간의 아리스토텔레스 학설에 관한 토론이 열린 어느날, 갈릴레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만 무조건적으로 믿으며 "땅으로 떨어지는 물체의 속도는 그 물체의 무게에 비례한다. 어떤 돌보다 열 배 무거운 돌은 열배 빠른 속도로 추락한다"라는 주장을 하는 학생들의 의견에 정면 반박하였고 이에 학생들은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대학자의 주장을 너가 뭔데 반박을 하냐"며 논쟁이 붙었다. 덕분에 갈릴레오는 대학내에서 싸움닭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학교생활을 해야만 했다.

[출처: http://yoosi0211.tistory.com/entry/그래도-지구는-돈다-갈릴레오-갈릴레이 ]


출처: 나무위키




에디슨

에디슨과 테슬라 이 둘은 동시대의 발명가라는 점은 동일하지만 그 방식에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에디슨은 자신이 발전시킨 직류(DC)를 최고라 생각했지만 테슬라는 그 점에 동의하지 않았다. 테슬라는 교류(AC)를 발전시켰고 이 때문에 에디슨은 AC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서 교류 전기를 이용하여 사람을 사형시키는 기계인 전기의자를 제작해냈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코끼리 한마리를 교류 방식을 이용해 공개 처형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상당한 비난을 사기도 했다.

[출처: 나무위키 https://namu.wiki/w/토머스 에디슨]


출처: 나무위키


아인슈타인

특히 판에 박힌 학습을 요구하는 과목들을 경멸해서 과제수행을 엉망으로 한다든가. 교실에서 당돌하게 행동함으로써 그런 경멸감을 겉으로 드러냈다. 그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주제에 관해서라면 오만하고 무례한 짓도 서슴지 않았는데 어느 교사는 알베르트의 버릇없는 행동이 교사에 대한 학생들의 존경심을 훼손시킨다고 말하기도 했다.

[출처: http://egram.tistory.com/11 [에니어그램 -성격을 이야기하다]]


출처: http://goodenglishhabit.tistory.com/179


스티브 잡스

1980년대 제록스에서 새 컴퓨터 기종을 출시했을 때 잡스는 찾아가서 쓱 훑어본 뒤 엔지니어에게 “네가 평생 만든 게 다 똥이야”라고 말했습니다. 픽사(Pixar)에서 일할 땐 직원을 해고하면서 미리 알려주지도 않고 퇴직금도 주지 않았습니다.

[출처: 중앙일보 빽스트리트저널 20. 왜 유명한 창업가들은 성격이 나쁜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저들은 늘 '분위기'를 깨는 고집불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인정받고 있는 권위자의 말을 반박하거나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망치거나 위험을 감수하면서 까지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으니까요. 물론 저들처럼 주위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괴팍한 성격을 가졌을 경우 여러모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가 힘들 겁니다. 요즘처럼 '소통~소통~'하며 불통이 아닌 소통이 중요하다 외치는 때도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각자의 시대에서 '인정'을 받고 시대를 초월하며 명성이 알려집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잠시 떨어져 있던 이 글의 머리로 다시 돌아가 봅니다. 숀 코너리의 일화로 말입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해 분위기를 만듭니다. 설령, 자신의 성격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도 말입니다. 이로 인해 주위의 사람들은 그의 의도대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출처: http://unforgettable.tistory.com/entry/%EB%B6%89%EC%9D%80-10%EC%9B%94-The-Hunt-for-Red-October-1990



이때, 저는 그(고집불통)의 의도대로 행동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초점을 다시 맞춰보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와 같은 고집불통의 사람을 끝까지 무시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그가 가지는 분명한 성과나 가능성을 인정합니다. 즉, 그를 믿는 조력자가 되는 것이지요. 스승의 권위나 생각을 대놓고 무시하는 불량한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수년이 지나서야 이해할 수 있는 아인슈타인의 어려운 논문을 인정하고 받아준 교수가 있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폭언까지 일삼는 나쁜 성격이지만 고집을 인정하며 스티브 잡스와 함께 회사를 창업한 워즈니악도 있었습니다.


(개인의 도덕성이 크게 문제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요즘의 어떤 계통이 떠 오릅니다. 음주운전에, 도박, 불법사업에 마약까지 한 전과가 있어도 그저 잘 웃기거나 재밌기만 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 곳이 어디일까요? 또는, 그와 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소위 '아랫사람', '직원'들에게 월급과 보너스만 잘 챙겨 주면 쉽게 잊히는 CEO들이 있는 곳이 어디일까요?)


이를 보면 개개인의 성격이나 도덕성보다 결국 '성과'를 인정하는 '문화'가 그와 같은 분위기를 형성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로 인해, 괴팍한 성격과 도덕성을 가진 인물이 끝에 가서 좋은 성과를 내면 문제 될 만한 과거는 잊혀지는 것이지요.


이쯤에서 저는 대부분의 그 '주위 사람들'이 그와 같은 분위기를 자신들도 모르게 허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회의석상에서, 삼삼오오의 작은 대화에서, 둘만의 대화에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거나 어떤 분위기, 상대방의 기분을 깨기보다 '분명히 이건 뭔가 아니지만?' 남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다라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얼마나 있었을지를 생각해 봅니다.


재미 없는 유머에 웃고,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고, 이해 가지 않는 결정을 따르고, 하기 싫을 일을 맡게 되었을 때 했던 행동들을 말입니다. 


정리하자면, 누군가가 형성해 놓은 '분위기'를 따르다 보니 나름대로의 '이익'이나 성과가 따랐고 그래서 그러는 것이 체질화된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해서 손해가 났을 때도 그 누군가를 탓합니다. 내가 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잘못은 그 '주위 사람들'에게도 있습니다. 분위기를 깨어야 할 때 분위기를 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지만 (가장 나은 방법으로, 똑똑한 방법으로) 분위기를 깨거나,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밝은 면에서 때로는 어두운 면에서도 늘 두각을 나타내고 인정을 받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분위기'란 오랜 관습이나 권위, 시대를 역행하는 문화, 제도, 법, 익숙함이라는 단어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슬프지만, '돈'이 될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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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이 집구석 주인장의 브런치에도 동시에 게재됩니다.